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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
저의 집은 감옥입니다. 집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의 집에는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카메라와 기자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친척들도, 친구들도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 신문에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사진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상한 해설도 함께 붙겠지요. 오래 되었습니다.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요. 이런 상황을 불평할 처지는 아닙니다. 저의 불찰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생활은 또한 소중한 것입니다.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자유, 마당을 걸을 수 있는 자유, 이런 정도의 자유는 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지금 이만한 자유가 보장이 되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는 집 뒤쪽 화단에 나갔다가 사진에 찍혔습니다. 잠시 나갔다가 찍힌 것입니다. 24시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제는 비가 오는데 아내가 우산을 쓰고 마당에 나갔다고 또 찍혔습니다. 비오는 날도 지키고 있는 모양입니다. 방 안에 있는 모습이 나온 일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커튼을 내려놓고 살고 있습니다. 먼 산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보고 싶은 사자바위 위에서 카메라가 지키고 있으니 그 산봉우리를 바라볼 수조차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방안에서 비서들과 대화하는 모습, 안 뜰에서 나무를 보고 있는 모습, 마당을 서성거리는 모습, 이 모든 것이 다 국민의 알권리에 속하는 것일까요?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저의 안마당을 돌려주세요. 안마당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자유, 걸으면서 먼 산이라도 바라볼 수 있는 자유, 최소한의 사생활이라도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법조기자’라는 블로거 명으로 다음 view에서 활동하면서 김준규(사진) 검찰총장이 법조 출입기자들에게 추첨형식으로 돈봉투를 나눠준 것과 관련해 글을 올리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라고 여겨져 글을 올립니다. 몇몇 블로거가 이 문제를 다뤘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다 자세한 설명과 소회를 적습니다.
사건은 지난 3일 서울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열린 김준규 총장과 법조팀장 기자단과 간담회를 겸한 만찬 자리에서 발생했습니다. 기자 22명과 대검 간부 8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김 총장이 추첨 형식으로 50만원이 든 ‘돈봉투’를 기자 8명에게 나눠준 것이 사건의 핵심 내용입니다. ● 참석한 법조기자는 경력 15년 안팎 참석한 기자단인 법조팀장을 소개하려면 법조 출입 기자단의 구성을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언론사마다 사회부에 법조팀이 있고, 그 팀에 기자 5~8명이 속해 있습니다. 경력 15년 안팎의 기자가 법조팀장을 맡습니다. 팀장을 비롯한 법조팀 소속 기자들은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으로 매일 출근해 법원과 검찰을 취재합니다. 기자실은 대법원과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 등 네 곳에 있습니다. 팀장(1진)은 대법원을, 현장반장(2진, 경력 10년 안팎)은 서울중앙지검을, 나머지 기자들은 대검찰청이나 서울중앙지법, 서울중앙지검을 출입합니다. 김준규 총장이 사건 당일 만난 기자들은 대법원을 출입하는 팀장(1진)입니다. 김 총장은 대검찰청 출입기자(3진이나 4진)는 몇 번 만났지만, 팀장을 만난 것은 그날이 처음입니다. 언론사별로 한 명씩 22명의 기자가 참석했고, 4개로 분리된 테이블에 대검 간부(8명)와 기자들이 함께 앉아 만찬과 함께 폭탄주를 4잔 돌렸습니다. ● 조중동, 한겨레·경향 등 포함 만찬이 마무리될 때쯤 김준규 총장이 갑자기 이벤트를 제안했습니다. 티켓을 준비했는데 추첨 형식으로 나눠주겠다고 말입니다. 냅킨에 똑같은 번호를 두 개 적고, 반씩 찢어서 하나는 기자에게 주고, 다른 하나는 조그만 통에 넣었습니다. 김 총장과 대검 간부들이 돌아가며 통 속의 냅킨을 뽑았고 같은 번호가 적힌 4명의 기자가 호출됐습니다. 반응이 괜찮자 한번 더 추첨해 모두 8명의 기자가 당첨됐습니다. 그리고 앞뒷면에 ‘격려’ ‘검찰총장 김준규’라고 쓰여 있는 봉투가 전달됐습니다. 당시 기자들은 문화상품권쯤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공식 만찬은 거기서 끝났고 2차 술자리에 일부 기자가 참석했고, 그곳에서 ‘격려 봉투’ 2개가 더 뿌려졌습니다. ‘격려 봉투’에 당첨된 기자의 소속 언론사는 다양합니다. 조선·중앙·동아 가운데 한 언론사도 있고, 한겨레·경향 가운데에도 있습니다. 방송사도, 경제지도 있지요. 추첨이었다는데 어쩜 그렇게 다양한지 놀라울 정도입니다. 봉투에서 현금과 수표 50만원이 나오자 한 기자가 다음날 대검찰청 대변인실로 찾아가 항의하고 ‘격려 봉투’를 놓고 나왔습니다. 문제가 공식적으로 불거지자 나머지 기자들은 그 돈을 봉사단체에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변인실에 기자가 반납했던 봉투도 여기에 더해졌습니다. 당시 대변인실은 김 총장이 즉흥적으로 제비뽑기를 제안해 ‘격려 봉투’에 현금이 들어있는줄 몰랐다고 설명했습니다. 봉투는 앞서 방문했던 서울서부지검에서 쓰고 남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려고 공식적으로 준비했던 것이 아니라는 해명입니다. ● 돈봉투 반환·기부로 엇갈려 ‘격려 봉투’ 를 기부하기로 기자들이 정리했지만, 한겨레신문은 이 사건을 보도하겠다고 법조 출입 기자단에 밝혀왔습니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김준규 총장의 행실이 부적절했음이 분명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도 보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6일 아침,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고, 인터넷 언론이 잇따라 받아 보도했습니다. 결국 김 총장은 대변인실을 통해 “사려깊지 못한 행동이었다.”며 유감을 표명합니다. 서울중앙지검을 출입하는 법조팀 2진 기자인 저는 문제의 그 만찬자리에 가지 못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대법원을 출입하는 1진(법조팀장)만 언론사당 한 명씩 참석하는 자리였으니까요. 법조팀장들은 김준규 총장이나 대검찰청과 관련한 기사를 쓰지 않습니다. 대검 출입기자들이 따로 있으니까요. 김 총장 측이 ‘뇌물이나 촌지가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법조팀장들이 대검 출입기자들이 쓰는 기사를 ‘데스킹’하다는 점에서, 대검의 해명이 딱히 설득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 만연한 ‘패밀리 문화’가 원인 김준규 총장의 그날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기사생활 8년 가운데 5년을 법원과 검찰을 출입했지만, 저는 ‘돈봉투’를 뿌리는 법조인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구설수’에 민감한 검사, 판사들이 그런 일을 버린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언론인에게 ‘촌지’를 건넸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그건 먼 과거 이야기입니다. 요즘처럼 옆집 숟가락도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시대에…. 미친 짓이죠.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법조팀에 만연한 ‘패밀리 문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자가 검찰이나 법원 등을 오래 취재하다 보면 취재원과 가까워지고, 그만큼 그 문화에 젖어 듭니다. 판검사와 가까이 지내며 자연스레 그들의 애환에 마음을 열고 그들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사명을 점점 게을리할 수 있습니다. 매일 얼굴보는 사람을 비판하는 ‘아픈 기사’를 쓰기가 참 민망해질 수도 있죠. 기자가 그렇게 ‘패밀리’가 되면 ‘특종’도 수월해집니다. ‘밀월관계’에 있는 기자에게 뉴스감을 흘려주는 거지요. 먹이사슬처럼 먹고, 먹히는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 ‘집안어른’이 주는 용돈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김준규 총장은 법조팀장을 ‘패밀리’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지방검찰청에 방문해 직원들에게 격려금을 주듯 ‘기자 패밀리’에게 격려금을 나눠준 것입니다. 오히려 이 같은 ‘가정 문제’를 누설한 일부 언론사를 ‘패륜아’로 여기고 야속해할 수도 있습니다. ‘검찰총장 돈봉투 추첨 사건’의 1차적 책임은, 그래서 기자들에게 있습니다. 검찰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그 결과 검찰총장이 기자들을 ‘패밀리’로 오해하도록 했으니까요. 또 돈봉투를 검찰총장에게 되돌려주지 않고 기부단체에 보냄으로써 기자들 스스로도 ‘검찰 패밀리’임을 자인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집안 어른’께서 주신 용돈을 돌려드리는 게 예의가 아니라서 기부하는 편법을 동원한 것이라고 봅니다. 돈봉투가 살포된 그 현장에서 기자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공연 티켓’이나 ‘문화상품권’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는데 정말 돈인줄 받는 순간, 혹은 만찬자리가 끝날 즈음 몰랐을까요? 그래서 이 사건의 발생부터 마무리까지 저는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고, 또 법조기자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많은 고민과 과제를 남겨준 사건이라 마음이 무겁습니다.
노무현은 박연차가 조카사위에게 퇴임 송금했다는 500만불은 퇴임 이틀을 앞둔 대통령에게 무슨 특혜를 기대할 것도 아니고 그저 오해를 받을까봐 미루었던 사업가끼리의 거래일 뿐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하지만 아내가 수십년 후원자에게 100만불을 빌린 것은 차용증을 썼고 대가성이 아니었어도 사실이고 잘못이었다고 사과했다. 그렇지만 아내가 돈을 빌린 사실을 재임중에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겨레, 경향은 노무현을 아내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
경향의 유인화라는 기자는 노무현 부부의 가상 대화라면서 노무현이 “걱정 마. 내가 막무가내로 떼쓰는 초딩화법의 달인이잖아. 초지일관 당신이 돈 받아서 쓴 걸 몰랐다고 할 테니까.”라고 소설을 썼다. 한겨레 김종구 논설위원은 당신의 부패로 진보 가치까지 덩달아 똥물에 휩쓸리지 않도록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마지막 승부수”를 기대한다며 사실상 노무현에게 자살을 권했다. 노무현을 죽인 것은 언론이다. 특히 한겨레와 경향의 죄가 엄중하다. 봉하마을에서는 한겨레, 경향만 구독했다. 부인한테 죄를 덮어씌우고 죽지도 않는 비굴한 놈으로 몰아세운 것이 경향이고 한겨레였다. 그런데도 사정을 모르는 국민은 오늘도 한겨레와 경향에 노무현 추모 광고를 실어준다. 내일이라도 노무현처럼 행동하고 노무현처럼 말하는 정치인이 나타난다면 한겨레와 경향은 개과천선하여 그가 하는 말에 진정으로 귀기울일까?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언론이 진보의 가치를 독점하는 한 노무현은 다시 죽는다. 그리고 추모광고는 다시 실릴 것이다. 노무현을 죽인 똑같은 신문에.
1929년 2조9980억달러 규모였던 세계무역은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1930년에는 2조7390억달러, 1931년에는 1조8390억달러, 1932년에는 1조2060억달러, 1933년에는 9920억달러로 급감했다.
세계무역이 1930년과 1931년 사이에 무려 1조달러 준 것은 1930년 6월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개정 관세법의 영향이 컸다. 미국은 자국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2만개 품목의 관세를 크게 올렸다. 그러자 다른 나라들도 경쟁적으로 보복 관세를 물렸다. 보호무역을 했지만 실업자는 더 늘었다. 1930년에 7.8%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1931년에는 16.3%로 껑충 뛰었고 1932년에는 24.9%, 1933년에는 25.1%로 악화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약과였다. 변변한 자원도 없고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식민지도 없이 1차대전 이후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갚느라 허덕이던 독일에게 대공황은 재앙이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자국 금고에만 금을 쌓아두고 타국의 어려움은 외면했다. 전쟁배상금과 경제난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던 독일은 극도의 경제난에 봉착했다. 독일 국민은 독일의 존립을 위협하는 무국적 자본주의와 무국적 공산주의로부터 독일을 지켜주겠다며 국가사회주의를 부르짖은 히틀러에게 빠져들었다. 히틀러는 처음부터 "생존공간" 확보를 부르짖었다. 체코나 폴란드 같은 약소국에게 독일의 생존공간론은 위협이었지만, 1차대전에서 진 독일에게는 다른 의미도 있었다. 대공황기를 거치면서 히틀러는 불안한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에 기대지 않는 독일만의 자립경제를 세워야 하고 그러자면 원료와 시장 확보를 위한 생존공간 마련이 급선무라고 믿었다. 히틀러는 자립경제를 위한 생존공간 확보를 위해 폴란드와 체코처럼 국경을 맞댄 나라를 야금야금 삼켰다. 나치의 자립경제는 타국을 등쳐먹은 사이비 자립경제였다. 자기의 어려움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은 북한의 자립경제와는 달랐다. 일본이 1930년대 초 만주로 쳐들어간 것도 면제품 수출 시장이 미국과 영국의 보호주의로 막히면서 체제 유지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무솔리니도 1922년에 정권을 잡았지만 바로 식민지 쟁탈전에 나선 것이 아니었다. 국제 금융이 와해되고 각국의 보호주의가 확산되면서 이탈리아도 생존공간론을 내걸고 1930년대 중반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경제 위기 자체가 파시즘을 낳은 것이 아니라 경제 위기를 빌미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채택한 보호주의가 파시즘의 큰 원인이었다. WTO(세계무역기구)에 따르면 금년 들어 무역 규제가 급증하고 있다. 각국은 보호주의를 추구하면 공멸이라고 국제회의에서는 말해도 막상 자기 나라에서는 자국 기업과 자국 노동자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오바마도 기업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미국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고 중국 정부도 중국 기업들에게 비슷한 지침을 내리고 있다. WTO는 올해 세계무역이 작년보다 10%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보호주의가 확산되면 앞으로 무역량은 더욱 급감할 수밖에 없다. 보호주의의 파도가 거세져도 영토가 넓고 자원이 많은 나라는 타격을 덜 받는다. 미국인은 해외여행은 못 다닐지 몰라도 굶어죽지는 않는다. 러시아도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도리어 큰소리를 칠지 모른다. 영국은 자원은 별로 없지만 영연방이라는 기댈 언덕이 있다. 루마니아처럼 별볼일없는 나라도 전에는 나치 독일에 빌붙었지만 지금은 유럽연합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다. 중남미 국가는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기에 공동체 의식이 짙고 아세안도 그렇다. 이슬람권은 말할 나위 없다. 쿠바나 북한처럼 자립경제를 추구해온 나라도 새삼 어려울 것이 없다. 한국은 다르다. 한국은 자원이 없다. 자체 시장도 좁다. 전세계를 시장으로 삼아 제조업으로 급성장한 나라다. 보호주의의 벽이 높아져서 수출길이 막히면 고립무원이다. 90년대 초반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걸은 것은 돈이 없어서였다. 어제까지 현물로 거래했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현금결제를 요구하자 북한은 아무것도 들여올 수가 없었다. 한국도 보호주의로 수출길이 막혀 돈을 못 벌면 아무것도 들여올 수가 없다. 아니, 돈이 있다 하더라도, 막대한 부채를 안은 미국이 달러를 마구 찍어내면서 한국이 많이 보유한 미국 채권이 휴지가 되면, 한국은 아무것도 못 들여온다. 휴지조각이 된 달러 대신 상대국에서 현물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유무역 체제에서 다른 나라 자원을 들여와 물건을 만들어 수출하면서 먹고 살아온 나라다. 보호주의 체제에서 한국은 풍요를 못 누린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꼭 모순이 아니다. 나라 밖으로는 개방과 효율이라는 자본주의의 강점을 살리고 나라 안으로는 복지와 안정이라는 사회주의의 강점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영리한 나라는 실제로 그렇게 한다. 자유무역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들이었다. 그들은 자유무역의 파도를 타고 전세계를 수출 시장으로 삼아 급성장했다는 점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지만 세계화의 수혜를 소수가 독점하지 않고 다수가 나누어가진다는 점에서는 사회주의 체제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들 나라의 발전 조건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서로가 양보하는 타협의 문화가 있었고, 그것을 주도한 것은 언론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은 자기 나라의 조건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다. 보수 언론은 아무리 세계화를 통해서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돈은 오직 부자의 몫이며 서민은 떡고물만 받아도 감지덕지라고 떠든다. 진보 언론은 세계화 자체를 부정하고 자원이 없는 한국더러 자원 부국 베네수엘라 같은 사회주의적 노선을 요구하면서 거기에서 벗어나면 신자유주의자라고 몰아붙인다.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로 안다. 노무현은 개방과 무역을 통한 한국 공동체의 기회 확대를 부르짖었다가 친미 신자유주의의 앞잡이로 진보 언론에게 지탄받았고, 복지와 안전망 구축을 통한 개인의 기회 확대를 부르짖었다가 수구 언론에게 친북 빨갱이로 난도질당했다. 저질 자본주의와 저질 사회주의를 맹신하는 저질 한국 언론이 합심해서 노무현을 죽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추모사에서 국민이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지 않는다고 했지만 깨어 있는 국민을 만드는 것은 깨어 있는 언론이다. 깨어 있는 언론을 지금이라도 만들지 못하면 노무현은 영원히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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